죄에 대한 교회 공동체의 한계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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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에 대한 교회 공동체의 한계에 대해...
복음과하나님나라2010/09/18 00:07
S교회 J목사님과 관련된 가슴 아픈 소식을 듣고, 무엇인가 마음을 수면 저 아래로 끌어내리는 느낌이 든다.
나 역시, 지난 1월부터 교회 분쟁으로 인해 공동체를 잃어버린 상황인지라 S교회의 소식은 더욱 아프게 다가온다.
내가 더욱 아파하는 이유는, 그 분의 그런 행동으로 인함이 아니다.
그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공동체의 한계때문이다.
교회 뿐 아니라 사회 어느 곳이든, 어느 공동체든, 문제는 발생할 수 있다.
문제가 발생하면 지혜를 모아 해결을 하면 된다.
사회나 공동체의 가치는 문제가 얼만큼 발생하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가느냐에 따라 결정지어진다고 본다.
그런면에서, 한국교회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와 능력이 너무 빈약하다.
마치, 땅 밑에는 썩은 물이 흐르고 있는데, 그 위에 흙을 덮고 예쁜 꽃을 심어놓는 꼴이다.
땅 위에는 아무리 예쁜 꽃이 피었어도, 썩은 물이 흐르는 그 땅은 이미 죽은 땅인데,
썩은 물을 퍼내고, 땅을 갈아엎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런 과정에서 교회의 본래 목적과 그리스도인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훼손되며
미처 소화되지 못한 문제들이 공동체 깊숙한 곳 어딘가에 잠복되어 있다가 불쑥 튀어나오게 된다.
마치, 점진적으로 타락해가는 사사시대처럼 악순환의 반복이다.
교회 문제에 대해, 목사님의 잘못에 대해 지적을 하면서
공동체에서 많은 격려를 받았다.
하지만 동시에 그에 못지 않은 비난도 받았다.
신기하게도 나를 향한 비난에는 몇가지의 공통적인 유형이 있었다.
그리고 그 유형은 우리 교회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많은 그리스도인 그리고 한국교회에 전체적으로 묵시적으로 깔려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음 글은 그 유형을 정리하여 교회 게시판에 올렸던 글이다.
S교회가 하나님의 뜻대로 문제를 성숙하게 해결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거듭나길 소망한다.
오늘 여러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모두 격하게 항의하는 전화였습니다.
제가 보낸 편지는 아니었지만 저의 글이 담겨있기 때문에 저또한 책임 의식을 가지고 그분들의 항의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딱 한 분의 전화는 그냥 도중에 끊어버렸습니다. 마음이 너무 아팠기 때문입니다.
OOO권사님이라고 밝힌 그 분은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본인도 담임 목사님의 비리에 대해 들어왔고 알고 있지만
그(비리) 것을 뛰어 넘어 모든 것을 감싸고 덮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머리가 멍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말이 과연 교회를 다니는 성도가, 신앙을 오래 간직하신 권사님이 하실 말씀이신지 혼란스러워졌습니다.
목사님께 잘못이 있다면 그것에 대해 바로잡고 권면해야 하는 것이 성도, 직분자의 도리가 아니었던가요.
그 분을 탓하는 마음은 들지 않았습니다. 다만,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어떤 분께서는 '목사님이 바람 핀 것도 아닌데...'라며 마치 목사님을 '억울한 희생양'으로 둔갑시키기도 하더군요.
저는 이번 일을 겪으며 교회를 병들게 하는 몇가지 오해들과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첫번째 오해. 인간은 누구나 죄인 아닌가? 목사님도 사람인데, 이해하고 덮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제게 전화주신 권사님처럼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맞습니다. 인간은 죄인입니다. 목사님도 성도들도 모두 죄인입니다.
죄인이지만 그리스도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래도 여전히 우리는 ‘죄성’을 지니고 살아갑니다.
인간은 누구나 죄를 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죄에 대해 너그럽게 이해하고 대강 넘어가란 뜻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죄’에 대해 더욱 단호하고, 스스로를 삼가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목사님의 불법을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오히려 목사님을 더욱 이롭게 하는 것입니다.
목사님께서 불법을 인정하고, 돌이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 뜻을 위해 여러 성도들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성도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간곡하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잘못이 있다면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물론, 목사님의 불법과 잘못에 대해서만 탓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교회를 바로 세우지 못한 죄에 대해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 인정합니다.
하지만, 지도자에게는 더욱 엄격한 잣대가 필요합니다.
지도자의 도덕성은 그 사회(공동체)의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죄보다 나라를 다스리는 자들의 죄가 더 엄격하게 다스려지는 이유는 그 때문입니다.
교회가 죄의 문제에 대해 단호하고 현명하게 풀어나가지 못한다면
도대체 우리는 사회 어느 곳에서 죄의 문제에 대해 단호하고 현명하게 풀어갈 것을 기대해야 하는 것입니까.
두번째 오해. 하나님께서 기름부으신 자를 어떻게 성도가 감히!
많은 성도님들이 목사님에 대해 말씀하실 때 구약 시대의 제사장에 빗대어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사울이나 다윗 왕에 빗대어서도 말씀하십니다.
목사님, 제사장 맞습니다. 그런데, 목사님과 더불어 성도들도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을 통해서만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던 구약시대와는 달리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인해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며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된 ‘만인 제사장’이 된 것입니다.
목사님이 하나님께서 기름부으신 자라면
목사님과 일부 성도들이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장로님들도 하나님께서 기름부으신 자들이요,
우리 모두 기름부으신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역자로서 목사님을 존중하고, 따라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목사님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교회는 하나님만이 주인이 되시는 곳이지 목사님이 주인이 아니며,
모든 성도가 한 지체가 되어 함께 세워가야 하는 곳이지, 목사님 맘대로 쥐고 흔드는 곳이 아닙니다.
OOO권사님, 제 편지때문에 화 많이 나셨죠?
그런데, 화가 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권사님이 그토록 따르시는 담임 목사님이 공격받는 것 같아 화가 나셨습니까?
아니면 이 교회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운영되고 있지 않는 것 같아 화가 나셨습니까?
만약, 전자의 경우라면, 권사님이 따르시는 분은 하나님입니까, 목사님입니까?
만약, 후자의 경우라면, 저한테 화를 내실 것이 아니라 당사자인 분께 화를 내시고,
그 분이 돌이킬 수 있도록 권면하는 것이 권사님이 하실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목사님을 '하나님의 기름부은 받은 종'이라고 표현하다가
정작 그 목사님이 잘못을 저지르면 '사람이니까 그럴 수 있지'라고 한 발 물러서는
이 심각한 모순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세번째 오해. 잘못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직접 치실 것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시기도 하지만
기독교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세우시고 그 사람을 통해 일하시는 역사였습니다.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귀한 존재였습니다.
왕이나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범하였을 때 회개를 촉구하였던 선지자들과
교회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때로는 단호하게 질책하였던 사도들을 통해
복음이 온전하게 전하여지며 교회가 튼튼하게 세워졌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에게 그런 역할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물론 우리 모두가 '선지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선지자적 영성과 양심을 가지고 교회를 바로 세워나가는 역할을 감당하도록 몰아세우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OOO권사님의 말씀을 들으며 가슴이 먹먹해졌던 이유는,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시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의 온전함인데,
우리에게 공동체를 허락하신 이유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게 하심인데,
우리는 자꾸만 우리의 죄 된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수준을 우리 수준으로 끌어내리고도 너무 당당합니다.
하나님께 너무 죄송하고 민망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러하시겠지만 저는 요즘 교회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합니다.
<교회, 나의 사랑 나의 고민>이라는 책 제목처럼
교회는 요즘 저를 가장 아프게 하는 가시같은 존재이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소중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교회를 생각하면 가장 슬프고 아픈 이유는 그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가장 크게 책임을 져야 하는 목사님은
목사님이 지키셔야 할 것을 지키기 위해 온갖 불법과 파행을 거듭하고 계시고,
장로님들을 비롯하여 교회의 성도들은 편을 갈라 서로를 반목하고 있습니다.
죄가 해결되기는 커녕, 숨겨진 죄의 본성들이 제 철을 만난 듯 교회 곳곳을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그런 사이, 하나님의 몸 된 교회는 찢기고 있습니다.
우리는 미성숙하고 안일한 죄에 대한 대처로 인해
하나님의 교회가 망가지고 찢어지도록 방치하는 죄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이 점에 대해 마음을 찢으며 함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지혜를 구해야함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쉽게, 덮어버리려 합니다.
절망
김수영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여름이 여름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속도(速度)가 속도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졸렬(拙劣)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바람은 딴 데에서도 오고 구원(救援)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절망(絶望)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는 개인과 공동체는 절망의 다른 이름임을 가슴 깊이 새기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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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은님의 댓글
이지은 작성일아...지금...마지막 때라고 합니다...이때 일수록 우리들은...이땅의 교회는 정말 코람데오...더욱 그분앞에서 거룩함과 성결함으로 무장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기도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