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인물 들어봤니]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 선교사(Appenzeller, Henry Gerh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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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런 인물 들어봤니' 코너에서 만나볼 신앙의 선배님은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 (Appenzeller, Henry Gerhard) 선교사입니다.
1919년 3월 1일 서울 종로 태화관에서 열린 독립선언식에 참석했다가 일경에 체포됐다. 2년 8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그는 혹독한 옥고를 치르며 만기까지 복역한 뒤 풀려났고 1922년 봄, 내리교회의 9대 목사로 부임했다. 신 목사는 부임 후 교회 안에 청년단체인 ‘엡웟(Epworth)청년회’를 조직해 청년들에게 민족사상을 심었다. 엡웟은 감리교 창시자인 영국 존 웨슬리 목사의 고향이다. 내리교회는 1897년 한국 최초로 조직됐던 기독교청년회 ‘엡웟청년회 나인드지파(인천 지역)’를 재정비했다. 엡웟청년회는 당시 독립협회와 협성회를 통해 배출된 청년들이 독립협회 해산 후 대거 입회할 정도로 민족운동의 산실로 역할을 했다. 신 목사가 1923년 친필로 기록한 ‘인천 내리교회 역사’는 오늘날 인천 강화 지역 선교역사뿐 아니라 한국 초기 교회사 연구의 중요한 사료로 평가받는다.
1920년 8대 목사로 부임한 김진호(1873~1960) 목사 역시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김 목사는 3·1운동 당시 서울 시내 학생들과 민족대표단을 맺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 당시 정동교회의 전도사였던 그는 이필주 담임목사의 부탁을 받아 독립선언서를 서울 시내 각국 영사관에 전달했다. 김 목사는 배재학당에서 3·1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일경에 체포돼 징역 8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당시 재판에서 “하늘의 뜻을 따라 조선독립운동을 하면 민족자결주의에 의해 독립이 된다고 생각해 3·1운동에 참여했다”며 독립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내리교회에서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해 목회자가 된 현순 목사도 있다. 그는 1919년 상해임시정부 초기 춘원 이광수와 함께 독립선언서를 영문으로 번역해 미국과 중국에 보내는 역할을 했다.
1920년 8대 목사로 부임한 김진호(1873~1960) 목사 역시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김 목사는 3·1운동 당시 서울 시내 학생들과 민족대표단을 맺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 당시 정동교회의 전도사였던 그는 이필주 담임목사의 부탁을 받아 독립선언서를 서울 시내 각국 영사관에 전달했다. 김 목사는 배재학당에서 3·1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일경에 체포돼 징역 8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당시 재판에서 “하늘의 뜻을 따라 조선독립운동을 하면 민족자결주의에 의해 독립이 된다고 생각해 3·1운동에 참여했다”며 독립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내리교회에서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해 목회자가 된 현순 목사도 있다. 그는 1919년 상해임시정부 초기 춘원 이광수와 함께 독립선언서를 영문으로 번역해 미국과 중국에 보내는 역할을 했다.
내리교회는 이처럼 아펜젤러와 조지 존스 선교사가 초기 교회의 틀을 다졌고 현순 김진호 신홍식 목사가 독립운동에 적극 가담하면서 한국근현대사 속에 깊이 스며들었다.
1901년에는 김기범 목사가 한국인 최초로 목사 안수를 받았다. 1902년 12월에는 한국 최초로 홍승하 선교사를 해외로 파송했다. 홍 선교사는 하와이에 미주 최초 한인교회인 호놀룰루 그리스도 연합감리교회를 세웠다. 내리교회는 최초의 해외 선교사가 들어온 교회인 동시에 최초로 해외 선교사를 파송한 교회인 셈이다. 1907년에는 한국 최초로 예배당 내 남녀 칸막이를 없앴을 만큼 성경에 입각한 평등사상의 실천에도 앞장섰다. 1946년 3월에는 백범 김구 임시정부 주석이 내리교회를 방문했다.
아펜젤러 선교사가 제물포항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부활절 주간이었다. 그가 1885년 4월 9일 미국북감리회 선교부에 보낸 서신에는 “우리는 부활절에 여기에 닿았습니다. 부활하시던 날 죽음의 철장을 꺾으신 주께서 이 백성을 얽어맨 결박을 끊으시고 그들을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릴 자유와 빛 속으로 인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고 적혀 있었다.
김흥규 목사는 7일 “교회는 이 시대와 사회 속에 들어가 사람들과 공감하며 섬기고 돌봐야 한다”며 “내리교회는 매주 화요전도대회를 통해 토스트 커피 차 등을 갖고 교회 밖으로 나가 학생들과 지역주민들을 섬기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100년 전 3·1운동에 기독교가 앞장섰던 만큼 이제 한국교회도 다시 예수님이 전했던 그 복음의 정신과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교회가 중심이 돼 올바른 역사의식을 갖고, 기독교적 삶을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 내리교회의 선구자들인 헨리 아펜젤러 선교사(왼쪽), 김기범 목사(가운데)와 조지 존스 선교사 동상 모습 / [출처] 인천 내리교회
[글 출처] - 국민일보아펜젤러 선교사가 제물포항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부활절 주간이었다. 그가 1885년 4월 9일 미국북감리회 선교부에 보낸 서신에는 “우리는 부활절에 여기에 닿았습니다. 부활하시던 날 죽음의 철장을 꺾으신 주께서 이 백성을 얽어맨 결박을 끊으시고 그들을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릴 자유와 빛 속으로 인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고 적혀 있었다.
김흥규 목사는 7일 “교회는 이 시대와 사회 속에 들어가 사람들과 공감하며 섬기고 돌봐야 한다”며 “내리교회는 매주 화요전도대회를 통해 토스트 커피 차 등을 갖고 교회 밖으로 나가 학생들과 지역주민들을 섬기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100년 전 3·1운동에 기독교가 앞장섰던 만큼 이제 한국교회도 다시 예수님이 전했던 그 복음의 정신과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교회가 중심이 돼 올바른 역사의식을 갖고, 기독교적 삶을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 내리교회의 선구자들인 헨리 아펜젤러 선교사(왼쪽), 김기범 목사(가운데)와 조지 존스 선교사 동상 모습 / [출처] 인천 내리교회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066025&code=23111111&cp=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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